연두색 담배의 마지막 한 모금
불가피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
이 없으니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 눈이 너로 인해
번식하고 있으니 불가피하게 오늘은 너를 사랑한다 오늘
은 불가피하게 너를 사랑해서 내 뒤편엔 무시무시한 침묵
이 놓일 테지만 너를 사랑해서 오늘은 불가피하다
불가피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해서 이 영혼에 처벌
받을지 모르지만 시체를 사랑해서 묻지 못하는 사제처럼
불가능한 영혼은 꿈꾼다 환영에 습격받은 자로서 나는 사
랑하는 사람이 없으니 불가피하게 오늘은 너를 사랑한다
오늘은 몇천 년 전부터 살았던 바림이 내 머리칼을 멀리
데리고 날아갈 것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니 불가피
하게 오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
로 시작되는 연기가 연두색 담배의 끝물에서 흘러나온다
- 김경주, 「몽상가」중에서
* 오늘따라, 이 시가 무척 그리웠다. 아무 이유없이, 두서없이 나열되는 듯 무심한 저 문장이 간절했다. 아무도 알 수 없는, 당신과 나의 시간들은 여전히 흘러간다. 지난하기도, 분주하기도,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그 무언가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살아 가고 있다. 그래서, 마지막은 이병률의 한 문장을 더 깊이 새겨 놓았다. 마음 속에. 그리고 내 머리에.
그러기에 하겠습니까마는
약속한 그대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
날을 잊었거나 심한 눈비로 길이 막히어
영 어긋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
봄날이 이렇습니다, 어지럽습니다
천지사방 마음 날리느라
봄날이 나비처럼 가볍습니다
그래도 먼저 손 내민 약속인지라
문단속에 잘 씻고 나가보지만
한 한 시간 돌처럼 앉아 있다 돌아온다면
여한이 없겠다 싶은 날, 그런 날
제물처럼 놓였다가 재처럼 내려앉으리라
햇살에 목숨을 내놓습니다
부디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게
오지 말고 거기 계십시오
- 이병률, 「화분」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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